"그 단어, 문제 될 줄 몰랐는데요?" 사과문 안 쓰는 기획자의 비밀
사과문이 유독 자주 보이는 요즘입니다. 최근 스타벅스 이슈 등 기업과 개인을 막론하고 비슷한 실수가 반복되고 있죠. 대중의 시선은 '누가 잘못했나'에 쏠려 있지만, 기획자인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사후 수습이 아닌 사전 예방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콘텐츠 기획자라면 반드시 챙겨야 할 '문화 감수성'과 '리스크 방지 프로세스'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저 또한 표현의 실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 신규 서비스 운영 시절, 고객 문의에 '현재 A/B 테스트 중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비공개 답변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A/B테스트'라는 공급자 중심의 단어를 사용한 이 답변은 커뮤니티에 공유되며 조회수 700회를 기록했죠.
누군가에게는 이 전문 용어가 불쾌하고 무성의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던 그날 이후, 저는 한 달 동안 답변 프로세스를 전면 개편했습니다.
수천 개의 질문과 답변을 유형별 태그로 분류하고 답변 템플릿을 보안했으며, 유관 부서와 답변을 검증하는 과정을 추가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기존 답변 프로세스에 2단계 정도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당시 해당 서비스는 브랜드 만족도가 꽤 높았습니다. 까다로운 질문에 대한 답변도 잘 운영되고 있었기에 운영자였던 제가 방심했던 것이 화근이었죠.
<피지컬:아시아>에는 있고 <흑백요리사>에는 없는 것
*두 프로그램 모두 애정하는 시청자임을 밝힙니다.
출처 :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 아시아> 스틸
제가 좋아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있습니다. <피지컬 : 100>과 <흑백요리사>인데요. 두 시리즈 모두 섬세한 기획력이 돋보여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중 아시아 8개국 각 6명의 대표 선수들이 출전한 <피지컬 : 아시아>는 동양적인 분위기를 주는 무대 연출, 개성있는 경기도 재밌었지만 무엇보다 경기 진행이 '매끄럽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장호기 PD님의 강연을 들으러 갔더니 역시나 세심한 노력이 있었더라고요 .
장호기 PD는 “선수들이 서로 존중하며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해 문화 차이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고자 아시아 문화와 외교, 역사를 전공한 교수님들을 자문위원으로 모셔 자문과 검수를 받았다”라면서 “모든 참가자들이 종교나 문화적으로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사전에 모든 출연자 분들과 인터뷰를 진행해 필요한 요소와 피해야 하는 요소들을 꼼꼼히 체크했다. ”
참가자들이 최선을 다하려면 퀘스트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필수이기 때문에 많은 연구와 시뮬레이션 끝에 8개 언어를 동시 통역하는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구축해 중요 공지와 진행을 각자의 인이어를 통해 각국의 언어로 동시 통역을 진행했다”라고 국가 대항전의 제반 사항을 면밀히 준비한 노력을 소개해 기대를 더했다.박정선 기자(2025.10.21). " 1년 6개월간 제작…'피지컬: 아시아' PD가 전한 관전 포인트". JTBC뉴스. 링크
출처 : 넷플릭스
또 다른 사례인 <흑백요리사> 시즌 2 이야기를 해볼까요? 저 역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셰프님들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으며 즐겁게 시청했던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스레드(Threads)를 살피다 보니, 랍스터 요리 장면에 불쾌감을 표하는 시청자가 꽤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고통을 느끼는 갑각류는 산 채로 조리하기보다, 기절시킨 뒤 요리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맞다는 지적이었습니다.
한국은 현행법상 랍스터를 산 채로 요리해도 별도 규제가 없지만 유럽에서는 동물 복지법에 따른 처벌이 있기 때문인데요. 말그대로 문화 감수성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 넷플릭스라면 편집을 했어야 한다는 말이었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피지컬 : 아시아>의 문화적 감수성을 지키기 위한 세심함이 놀랍지 않나요? 또한 <흑백요리사>의 요리 장면이 누군가에게는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도 새롭고요.
이처럼 감수성의 영역은 아주 미묘하고 세심한 부분이라 우리가 '사소하다' 생각하며 놓치기 쉽습니다. 특히, 글로벌 콘텐츠 시대에 다른 문화권에 대한 감수성은 더더욱 다루기 어렵고요.
사과문 컬렉터가 제안하는 표현 리스크 방지 프로세스
콘텐츠 업계에서 일하며 정말 다양한 사례의 사과문을 봐왔습니다. 출처가 불분명한 밈과 짤의 사용, 고유명사가 틀린 경우, 역사적 인식 부족, 문화 감수성 부족 등등이요. 대부분은 에디터가 혼자거나 크로스 체크 시스템이 부족한 경우, 실수가 더 많이 생깁니다.
지금부터 표현 사고를 막아줄 방법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① 나만의 혹은 기업의 글쓰기 대원칙 세우기
사이드 프로젝트로 '꾸리레터' 운영을 결심한 순간, 워드를 키고 글쓰기 대원칙 10가지를 먼저 작성했습니다. 스스로 지켜야 할 약속이었죠. 그중 제5원칙은 [감수성] 내 글로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입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계 다양한 성별, 인종, 종교의 사용자를 두고 있는 글로벌 IT 기업들은 이미 엄격한 라이팅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습니다.
개발자를 위한 구글의 테크니컬 라이팅 가이드라인
출처 : Google - Choose language that benefits every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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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 (구글)
개발자 및 기술 문서 작성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별도로 두어, 소스 코드와 서비스 UI 전반에서 차별적 언어를 퇴출하고 있습니다.
• 링크 : Google - Choose language that benefits everyone
Microsoft (마이크로소프트)
'편향 없는 커뮤니케이션(Bias-free communication)'이라는 명칭으로 자사 브랜드 스타일 가이드 내에 포용적 언어 원칙을 매우 상세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 링크 : Microsoft Style Guide - Bias-free communication
카카오 (Kakao)
국내 기업 최초로 디지털 공간 내 혐오 및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증오발언 근절을 위한 원칙을 발표했습니다.
• 링크 : 증오발언 근절을 위한 카카오의 원칙
② 잘 쓴 사과문 레퍼런스 수집 및 분석
제 취미 중 하나는 사과문 수집입니다. 영화제 홍보팀 인턴으로 일했을 당시, 기술 오류에 대한 사과 공지문을 작성했던 적이 있었는데, 꽤나 부담스럽고 어렵게 느껴졌었거든요. 그 이후로 사과문을 꼼꼼히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책임 명시 여부, 면피성 표현 유무, 대응 속도, 그리고 대중의 댓글 반응까지 꼼꼼히 뜯어보면 대중이 기업에 요구하는 도덕적 기준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③ 사각지대를 없애는 다중 검토 프로세스 도입
뉴스레터 발송 서비스 메일리에서는 제미나이를 활용해 표현의 검토를 해주더라고요. 본문에 포함된 민감하거나 논란이 될 수 있는 표현(차별적 표현, 저작권 우려, 명예훼손 가능성, 광고 표시 누락)을 검토해주기 때문에 표현 사고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AI를 활용해서 맞춤법 검사와 마찬가지로 차별적 표현, 커뮤니티 어원, 혐오의 표현을 1차로 필터링해보세요.
또한 콘텐츠 발행 전, 세대와 성별이 다른 구성원 1~2명에게 뉘앙스 리뷰를 요청하세요. 비슷한 연령대의 팀원끼리만 검토하면 반드시 사각지대가 생깁니다.
전사적으로 텍스트 수정에 대한 권한, 배포에 대한 프로세스 점검을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각 팀별로 각각의 메시지 발송이 이뤄질 때 리스크 표현은 더 잡기 어려워집니다.
④ 독자와의 톤앤매너 사전 합의
조롱잔치의 첫 화면 / 출처 : 이용진 유튜브
유튜브 <조롱잔치>는 게스트를 불러와 맘껏 조롱하는 콘텐츠인데요. 첫 화면에 공지문을 띄웁니다.조롱이라는 컨셉에 맞게 불편한 표현이 등장할 수 있다는 사전 고지를 하는 것인데요.
이처럼 어떤 강도로 표현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부드럽게, 자주 안내해주세요. 반말을 하는 것조차 누군가에게는 무례하게 들릴 수 있으니까요. 개인/기업의 보이스 톤앤매너를 계속 독자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펜은 칼과 같으니 누군가를 찌르지 말라"
스승님의 가르침을 다시금 떠올려봅니다. 날 선 단어보다는 서로를 보듬고 안전하게 안아주는 언어들이 주변에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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